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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직장 적응기(1996~1998)

달자의 일상

by 오달자 2020. 5.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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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여러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졸업 이후 취업의 장벽이 어렵다는걸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토익시험이다 뭐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은 턱없이 부족했고 취업이 잘되는 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막막할 때 즈음....
우연한 기회에 학습지 방문 교사를 하게 되었어요.
지금도 학습지 업계에서는 1 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인지라 25여년전 제가 다닐때만해도 한창 사업이 번창할 시기라 교사모집을 많이 했더랬죠.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학습지 교사가 회사 소속인줄 아시는데 학습지 교사는 회사와의 계약을 체결한 개인사업자인지라 그 때 당시 4대보험이다 뭐다 그런것도 없었어요.
교사 지원을 하면 제일 먼저 단체합숙연수를 2주간 받습니다.
지방 모처에 마련된 연수원에서 숙식을 하며 아침 새벽 기상 체조후 식사후 오전9시부터 오후6시까지 학교수업 시간처럼 교육일정이 빡셉니다.
교재에 관한 교육과 더불어 마케팅 등 여러가지 과목을 합숙기간동안 교육을 받는데요~
교육 기간 동안 전국에서 아니 제가 받은 기수는 거의 대구,경북,경남 지역 지원자들로 이루어져 각 계 각층 연령도 다양하고 남,여 할것없이 한 번에 교육생이 150 명은 족히 넘었던것 같습니다.
앉아서 듣는 교육 수업 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 힘든 직업이니 극기훈련도 했던것 같네요.
그리고 조별 과제 발표나 조별 산행, 어찌 보면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듯한 연수 기간이었어요.

20대 젊은 지원자 뿐만아니라 기혼이신 분들,최고령의 지원자들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매일 매일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생기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젊은 남,여 선생님들도 계시기 때문에 간혹 연수기간 중 커플이 탄생하기도 하구요~
앗. 저는 우연찮게 제 친구 언니랑 같은 시기에 연수원에 들어 간지라~~ 언니를 많이 의지하며 연수 기간을 마쳤어요.

그렇게 연수를 받고난 후 각 자 지원했던 지역의 지점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가가호호 직접 집을 방문해서 아이들 학습지도를 하는 거라 사실, 20대인 저로서는 남의집 방문이 그리 편하지는 않더라구요.
그리고 학부모와의 대면자체도 어렵기도 하고 또 학습을 그만둔다고 하실때 대처해야할 자세라든가...
한6 개월 동안은 모든게 어슬프고 서툰 직장 생활이었습니다.

입사 당시에는 차량이 없었으므로 그 무거운 학습지를 가방 가득 넣고 다니는 일이 체력적으로 너무 버거웠었죠.
그러다 1 년 뒤 도저히 차량 없이는 일을 못하겠어서 그때 당시 티코차량을 할부로 구입해서 다녔습니다.

일이 생각보다 고되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 때 당시 최저임금에 비교해보면 수입이 적지 않았습니다.
힘든 와중에 돌아오는 월급날은 그만큼 노동에 대한 댓가를 받기에 무엇보다 젊고 혈기 왕성할 나이였기에 가능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2년이 가고 3 년차 되던 해에 IMF가 터졌습니다.
지금도 코로나로 인한 실직이라든가, 자영업자들의 연쇄부도 등 사회적 이슈로 인해 속출하는 피해들이 엄청나지만 IMF시절도 지금의 상황과 만만치 않을 정도의 타격이 컸었죠.

IMF당시 실직 가장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청년취업 또한 힘들었던 시기에 학습지 교사들도 결코 안전하지 않은 직종이었어요.
우선 가정 경제가 힘들어지면서 아이들 사교육이 제일 먼저 타격이 크죠.
저 또한 그만두는 회원들의 수가 늘어감에 따라 회사에서 저를 관리하시는 부장님과의 갈등을 못이겨 결국은 퇴사에 이르게 되었지요.
1998 년!
제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생각이 됩니다.
학습지 교사는 정직원이 아니라서 딱히 퇴직금이 있는것도 아니라 그져 마지막 월급 받은게 전부인데,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저는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학교 까지 정해놓고 떠날 날짜까지 받아놓고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서 결국은 어학연수는 무산되고 말았었죠.

그때 당시만해도 여자 혼자 해외를 보낸다는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인지라, 특히 아주 보수적이신 경상도 토박이신 아버지는 결코 딸이 혼자서 어디 집을 떠나냐고...하시면서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저 또한 딱 3달만 버틸 수 있는 자금 외에는 대책도 없이 가려던 거라 겁도 나고...이래저래 주저주저하다 결국 떠나지 못하게 되었죠.

나이는 먹어 가고 벌어놓은 돈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의 제 상황으로 또 다른 취업을 한다는게 결코 쉽지 않은 시기였어요.
여자 나이 27살.
지금이야 27살이면 한창일때지만 90 년대만해도 27이면 다들 시집 안가냐? 고 묻는 게 인사일 정도로 결혼을 재촉할 나이였어요.
당시 사귀는 남자도 없었을뿐더러 당장 먹고 살 일이 까막득한데 시집은 무슨....
저한테는 사치라고 생각이 되었어요.

퇴사직 후 곰곰이 생각을 했어요.
과연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하는 일이 옳은 걸까...
그 때 문득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때부터 제일 잘한다고 칭찬받았던 일이 바로 피아노치는거였어요.
어쩌다 중,고등 시절 농땡이를 부리다가 음악과는 거리가 먼 길로 살아오긴 했었지만 가슴 한 켠 항상 마음이 편치않았었어요.
내가 피아노만 그만 두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내 인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래!
죽기전에 하고 싶은 일은 꼭 하고 가자!
결심했어요.
다시 피아노를 하기로요.
27살 어린 나이도 아닌 시기에 남들은 시집갈 시점에 다시 무슨 피아노공부라뇨?
부모님은 펄쩍 뛰셨고 저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요.
1 년만 딱 준비해서 편입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저는 피아노 공부를 위해 서울로 상경을 하게 되는데요.~

서울 상경기는 다음회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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